2026. 6. 17. 07:03ㆍX
리스크랩연구소, 김훈 박사
-산업안전 · Safety-IV · ESG 리스크 전략 연구소
-사고발생 이전 개입을 연구하는 Safety-IV 플랫폼
-Safety-4 :사고를 사건이 아니라 ‘상태의 붕괴’로 다루는 새로운 안전 패러다임

사고는 왜 발생하는가. 오랫동안 안전학은 인간의 실수를 원인으로 설명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학자들은 더 중요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사람은 왜 위험을 보지 못하는가. 그리고 위험을 보고도 왜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는가. 이 질문에 답한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미카 엔드슬리(Mica R. Endsley)다.
1995년 발표한 「Toward a Theory of Situation Awareness in Dynamic Systems」에서 엔드슬리는 상황인식(Situation Awareness, SA)이라는 개념을 체계화했다. 그녀는 사고의 상당수가 기술적 결함보다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발생한다고 보았다. 특히 항공기 조종사, 원전 운전원, 군사 지휘관처럼 복잡한 시스템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단순히 정보를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현재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엔드슬리는 상황인식을 세 단계로 설명한다. 첫 번째는 인지(Perception)다. 현재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보는 단계다. 두 번째는 이해(Comprehension)다. 그 정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해석하는 단계다. 세 번째는 예측(Projection)이다. 지금 상태가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를 예상하는 단계다.
예를 들어 압력이 상승하고 있다는 경보가 울렸다. 이것을 보는 것이 인지다. 압력 상승이 공정 불안정을 의미한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이해다. 그리고 지금 개입하지 않으면 폭발로 이어질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 예측이다. 엔드슬리는 사고가 발생하는 이유를 단순히 정보를 몰라서가 아니라 이 세 단계 중 하나가 무너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이론은 항공, 원전, 철도, 국방, 의료 분야에서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실제로 현대 조종실(Cockpit), 원전 제어실(Control Room), 관제센터(Control Center)의 설계 철학 대부분은 엔드슬리의 상황인식 이론 위에 세워져 있다.
그러나 여기에도 한계가 존재한다.
엔드슬리의 관심은 인간이 무엇을 보고 있는가에 있다. 다시 말해 운영자(Operator)의 인지와 판단이 중심이다. 하지만 현대 산업재해는 점점 현장의 인지 문제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BP 텍사스시티 폭발, 딥워터 호라이즌, 후쿠시마, 보잉 737 MAX 사고를 보면 현장의 작업자들은 이미 위험 신호를 보고 있었다. 문제는 조직 전체가 그 위험을 통제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Safety-IV는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엔드슬리가 묻는 질문은 "사람은 위험을 보고 있는가?"이다. 반면 Safety-IV는 "조직은 어떤 위험상태로 이동하고 있는가?"를 묻는다. 상황인식은 개인의 인지 상태다. 위험상태는 조직의 상태다.
엔드슬리의 모델에서 중요한 것은 경보를 보는 것이다. Safety-IV에서 중요한 것은 왜 경보가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는가를 보는 것이다. 엔드슬리는 현재 상태를 이해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데 집중한다. Safety-IV는 현재 상태가 왜 위험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는지를 이해하려 한다.
예를 들어 공장에서 근접사고 보고가 감소하고 있다고 하자. 엔드슬리 관점에서는 운영자가 이 정보를 인지하고 그 의미를 이해하며 미래 위험을 예측해야 한다. 그러나 Safety-IV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왜 근접사고 보고가 감소하는가. 왜 현장은 침묵하고 있는가. 왜 정보가 경영진에게 전달되지 않는가. 왜 생산 압력이 증가하고 있는가. 왜 개입 권한이 약화되고 있는가. 즉 위험 신호 자체보다 위험 신호를 만들어내는 상태(State)를 본다.
이것이 상황인식과 위험상태의 차이다. 흥미로운 것은 AI와 스마트팩토리 시대에 엔드슬리의 이론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는 점이다. 자동화가 확대될수록 인간은 설비를 직접 조작하지 않는다. 대신 모니터를 바라보며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 문제는 자동화 수준이 높아질수록 상황인식은 오히려 약화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베인브리지가 말한 자동화의 역설(Ironies of Automation)이다.
오늘날 스마트팩토리의 가장 큰 위험은 설비 고장이 아니다. 인간이 더 이상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AI는 판단하지만 사람은 그 이유를 모른다. 데이터는 쏟아지지만 의미는 사라진다. 결국 상황인식은 약화되고 통제력은 감소한다.
Safety-IV는 이러한 현상을 조직 수준에서 바라본다. 생산 압력 증가, 작업 변경 증가, 신규 인력 유입, 위험 노출 확대, 정보 감쇠, 자동화 의존성 증가는 조직 내부의 엔트로피를 증가시킨다. 결국 시스템은 질서(Coherence)를 잃고 탈코히런스(Decoherence) 상태로 이동하게 된다.
따라서 미래의 안전은 단순히 상황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조직이 현재 어떤 위험상태(Risk State)에 있는지를 지속적으로 측정해야 한다. Safety-IV의 PAWI(Pre-Accident Window Index)는 바로 이러한 시도다. PAWI는 위험을 예측하는 도구가 아니라 조직이 아직 개입 가능한 상태에 있는지를 보여주는 계기판이다.
미카 엔드슬리는 안전학에 중요한 질문을 남겼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가?"
Safety-IV는 그 질문을 조직 차원으로 확장한다.
"당신의 조직은 지금 어떤 상태로 이동하고 있는가?"
어쩌면 미래 산업사회의 안전은 이 두 질문을 모두 이해하는 데서 시작될지도 모른다. 위험을 보는 눈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위험이 자라나는 상태를 읽어내는 능력이다. Safety-IV는 바로 그 상태를 관리하려는 새로운 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