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ent="width=device-width, height=device-height, initial-scale=1, minimum-scale=1.0, maximum-scale=1.0" />

알버트 반두라, 사고는 사회적으로 학습된다.

2026. 6. 19. 06:45안전칼럼


리스크랩연구소, 김훈 박사
-산업안전 · Safety-IV · ESG 리스크 전략 연구소
-사고발생 이전 개입을 연구하는 Safety-IV 플랫폼
-Safety-4 :사고를 사건이 아니라 ‘상태의 붕괴’로 다루는 새로운 안전 패러다임

알버트 반두라, 사고를 학습하는 조직

사고는 갑자기 일어나지 않는다. 이미 오래전부터 조직이 어떤 행동을 정상으로 학습시키고 있었는지가 한 순간에 드러났을 뿐이다. 사고가 발생하는 순간 우리는 누가 규정을 위반했는지, 누가 절차를 생략했는지, 누가 위험한 선택을 했는지 주로 그 마지막 행동에 주목한다. 그러나 사고 이전의 조직을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모습이 보인다. 그 위험한 행동은 이미 오래전부터 반복되어 정상화 되고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있었으며, 아무도 그것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 질문을 가장 먼저 체계적으로 설명한 사람이 바로 심리학자 알버트 반두라(Albert Bandura)다.

반두라는 인간이 단순히 경험을 통해서만 배우는 존재가 아니라고 보았다. 사람은 다른 사람의 행동을 관찰하고, 그 행동의 결과를 보면서도 학습한다. 그가 말하는 사회학습이론(Social Learning Theory)이다. 조직에서 신입사원이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은 규정집이 아니라 선배가 실제로 일하는 방식이다. 작업허가서를 어떻게 작성하는지보다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작업이 우회하는지를 먼저 배운다. 안전수칙보다 관리자와 동료들이 무엇을 용인하는지를 먼저 배운다. 결국 조직은 교육자료가 아니라 행동을 통해 스스로를 재생산한다.

반두라는 이러한 학습이 네 단계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설명했다. 첫째는 주의(Attention)다. 사람은 주변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행동에 주목한다. 둘째는 기억(Retention)이다. 관찰한 행동은 머릿속에 저장된다. 셋째는 재현(Reproduction)이다. 저장된 행동을 실제 상황에서 따라 해 본다. 넷째는 동기(Motivation)다. 그 행동이 보상받거나 처벌받지 않으면 반복된다. 결국 조직에서 반복되는 행동은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학습된 결과가 된다.

이 지점에서 기존 안전관리의 한계가 드러난다. 많은 조직은 사고가 발생하면 작업자의 일탈을 지적한다. 규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두라의 관점에서는 질문이 달라진다. 조직은 지금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규정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가 아니라 실제 현장은 무엇을 보여주고 있는가를 묻는다. 생산 목표를 맞추기 위해 절차를 우회하는 사람이 인정받고, 작업을 빨리 끝내는 사람이 좋은 평가를 받으며, 위험을 제기하는 사람이 조직의 분위기를 해치는 사람으로 취급된다면 조직은 이미 위험한 행동을 학습시키고 있는 것이다.

반두라의 또 다른 핵심 개념은 자기효능감(Self-Efficacy)이다. 자기효능감이란 어떤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자신의 믿음이다. 안전관리에서 자기효능감은 매우 중요하다. 작업자가 위험을 발견했을 때 작업을 중지할 수 있다고 믿는가. 관리자에게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고 믿는가. 위험한 작업을 거부해도 불이익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작업자는 위험을 보더라도 침묵하게 된다. 조직은 위험을 감지할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위험을 말할 자신감을 잃어버린 것이다.

실제로 많은 대형 사고 이전에는 위험 신호가 존재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도 말하지 않는다. 말해도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반두라의 관점에서 이것은 개인의 무책임이 아니다. 조직이 오랫동안 낮은 자기효능감을 학습시킨 결과다. 결국 위험을 보고도 행동하지 않는 조직은 위험을 발견하지 못하는 조직보다 더 위험하다.

이러한 해석은 Safety-IV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Safety-IV는 사고를 사건(Event)이 아니라 상태(State)의 붕괴로 본다. 그리고 그 상태는 설비 상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조직이 어떤 행동을 정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어떤 행동을 보상하고 있는가, 어떤 행동을 침묵시키고 있는가를 포함한다. 즉 위험상태는 물리적 상태이면서 동시에 행동적·심리적 상태다.

생산 압박이 증가하고, 작업 우회가 반복되며, 근접사고 보고가 감소하고, 작업중지권이 형식화되는 현상은 모두 하나의 공통점을 가진다. 조직이 위험을 학습하고 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예외였던 행동이 점차 정상으로 받아들여지고, 결국 누구도 문제 삼지 않게 된다. Safety-IV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이 바로 상태의 변화다. 위험은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하지 않는다. 조직이 반복적으로 학습한 결과로 성장한다.

그래서 Safety-IV에서 안전관리는 교육 횟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다. 조직이 무엇을 학습하고 있는지를 관리하는 것이다. 무엇을 보상하는가. 무엇을 묵인하는가. 어떤 행동을 성공으로 정의하는가. 어떤 행동을 정상이라고 부르는가. 이 질문들이야말로 조직의 위험상태를 결정한다.

알버트 반두라는 안전을 연구한 학자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인간이 어떻게 위험을 배우는지를 설명했다. 그리고 그의 이론은 오늘날 산업안전이 직면한 가장 중요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사람들은 위험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조직이 반복해서 보여준 행동을 학습할 뿐이다. 사고는 그 학습이 완성되었음을 알리는 마지막 신호일 뿐이다. Safety-IV는 바로 그 학습이 만들어내는 상태를 관리하려는 새로운 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