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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콧겔러(Scott Geller)

2026. 1. 2. 15:02안전공학자

스콧겔러

안전은 언제부터 행동이 되었을까. 스콧 겔러는 이 질문을 정면으로 밀어붙인 인물이다. 스콧 겔러는 버지니아 공대(Virginia Tech) 심리학과 교수로 있으면서 응용행동분석(ABA, Applied Behavior Analysis ) 기반의 산업안전을 연구한 사람으로 행동기반안전(BBS)을 산업 현장에 적용한 학계–실무 연결형 학자였다. 
그가 등장하기 전까지 산업안전은 규정과 처벌의 언어였다. 사고가 나면 왜 규정을 지키지 않았는지를 묻고, 교육을 늘리고, 감독을 강화했다. 겔러는 이 방식이 반복적으로 실패한다는 사실에서 출발했다. 사람들은 규정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 행동이 가장 합리적이기 때문에 위험한 선택을 한다는 점을 그는 정확히 짚었다.

겔러의 전환은 단순하지만 강력했다. 사람의 태도를 바꾸려 하지 말고, 행동이 나오게 만드는 조건을 바꾸자는 것이다. 행동은 의지의 산물이 아니라 강화의 결과다. 안전한 행동이 관찰되고, 즉시 피드백되고, 인정받는 구조에서는 행동이 달라진다. 그는 안전을 도덕에서 심리학으로 이동시켰다. 주의하라는 말 대신, 관찰하라. 혼내는 대신, 강화하라. 이 접근은 많은 현장에서 즉각적인 성과를 냈다.

여기까지 보면 겔러는 하인리히 이후 가장 현실적인 개혁자처럼 보인다. 실제로 그는 사람을 비난의 대상으로 두지 않았다. 사고를 개인의 결함이 아니라 환경의 산물로 보았다. 이 점에서 그는 처벌 중심 안전관리의 한계를 분명히 넘어섰다.

그러나 겔러의 안전은 끝까지 행동에 머문다. 무엇이 관찰되는가, 무엇이 점수로 남는가, 무엇이 평가되는가. 이 질문이 안전의 중심이 된다. 그리고 조직은 곧 학습한다. 위험을 줄이는 법이 아니라, 보기에 안전해지는 법을. 보호구는 착용하지만 판단은 침묵하고, 절차는 지키지만 우회는 숨겨진다. 행동은 안전해 보이지만, 시스템은 점점 더 취약해진다.

문제는 겔러의 안전이 사람을 여전히 관리 대상으로 둔다는 점이다.
처벌이 사라진 대신 관찰이 들어왔고, 비난이 줄어든 대신 점수가 생겼다. 통제의 언어는 세련돼졌지만 구조는 유지됐다. 복잡한 판단과 조정이 필요한 작업에서는 이 방식이 오히려 위험 신호를 가린다. 중요한 결정은 행동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겔러는 Safety-II로 넘어가지 못한다. 홀나겔이 말한 정상 작동의 취약성, 우즈가 말한 적응의 부담, 와익이 말한 의미의 고정은 행동 이전의 영역이다. 겔러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판단했는지보다, 그 판단의 결과로 드러난 행동을 관리한다. 사고 이후의 설명은 가능하지만, 사고 이전의 붕괴를 읽어내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겔러의 위치는 분명하다. 그는 안전을 처벌에서 관찰로, 의식에서 행동으로 이동시켰다. 행동은 개인의 성향이 아니라 환경의 결과라는 사실을 조직에 각인시켰다. 동시에 그는 행동 중심 안전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멈췄다.겔러 이후에 더 이상 “행동을 더 잘 관리하자”는 말은 충분하지 않다. 다음 질문은 자연스럽다. 행동이 나오기 전, 판단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그리고 그 판단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게 되는 순간은 언제인가.

안전이 행동에 머무는 한, 조직은 사고를 뒤에서 따라간다. 안전이 상태를 다루기 시작할 때에야, 비로소 사고보다 앞서 갈 수 있다. 리스크랩이 겔러를 다시 읽는 이유는 그가 답을 완성했기 때문이 아니라, 다음 질문을 피할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기서 더 분명해진다. 행동기반의 안전관리의 한계는 인간을 너무 조작적 대상으로 본다는 데 있다. 행동기반 안전관리는 인간을 이해한다기보다 조정한다. 사람을 판단의 주체가 아니라, 조건에 반응하는 객체로 다룬다. BBS의 전제는 명확하다. 행동은 환경의 자극과 결과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므로 관찰하고, 피드백하고, 강화하면 행동은 바뀐다. 이 논리는 심리학적으로 정합적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이 구조 안에서 인간은 무엇으로 남는가.

행동기반 안전에서 인간은 스스로 상황을 해석하는 존재가 아니다. 설계자가 의도한 방향으로 유도되어야 할 대상이다. 사람의 판단은 신뢰되지 않는다. 판단 대신 관찰 가능한 행동만이 관리 대상이 된다. 이 순간 인간은 더 이상 시스템을 버티게 만드는 존재가 아니라, 시스템의 출력값 중 하나가 된다.
이 조작성은 현장에서 매우 구체적인 결과를 만든다. 사람들은 위험을 줄이는 법이 아니라, 보여지는 행동을 관리하는 법을 배운다. 판단은 침묵하고, 위험은 은폐되며, 우회는 숙련의 이름으로 정교해진다. 왜냐하면 판단은 관찰되지 않지만, 행동은 점수로 남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이것이다. 행동기반 안전은 인간의 적응을 자산이 아니라 리스크로 본다. 사람이 상황에 맞게 조정하는 능력, 규정이 현실을 따라오지 못할 때 시스템을 살리는 판단, 이 모든 것은 BBS의 언어로는 관리 실패의 원천이 된다. 그래서 행동기반 안전이 강해질수록 조직은 인간의 적응 위에 더 많은 부담을 얹는다. 그리고 그 부담은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겔러의 이론은 Safety-II 이후의 이론들과 명확히 갈라진다. 홀나겔, 우즈, 데커는 말한다. 인간은 변동성을 흡수하는 완충장치다. 문제는 인간이 아니라, 그 적응을 끝없이 요구하는 구조다. 행동기반 안전은 묻지 않는다. 왜 그 판단이 필요했는가. 왜 그 행동 외에 다른 선택지는 사라졌는가. 언제부터 그 행동이 유일한 합리적 선택이 되었는가. 이 질문을 던지지 않는 순간, 안전은 관리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통제의 세련된 형태가 된다.

그래서 행동기반 안전의 한계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윤리의 문제도 아니다. 인간을 무엇으로 정의하느냐의 문제다. 행동기반 안전에서 인간은 조정 대상이다. Safety-II에서 인간은 시스템의 일부다. 3세대 이후 인간은 판단의 마지막 보루가 된다. 그리고 Safety4에서 인간은, 그 판단이 무너지고 있다는 상태를 읽어야 할 대상이 된다. 행동기반 안전은 틀리지 않았다. 다만 너무 인간을 조작 가능한 대상으로만 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안전은 인간을 보호하는 학문이 아니라 인간을 소모하는 기술이 되기 시작했다.